2021년 1월 이스라엘 배터리 스타트업 Store Dot은 5분안에 충전 가능한 배터리를 발표했습니다. 1년이 지난 2022년 3월 2분 충전에 160km를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도를 자세하게 읽어보면 양산 시기는 2032년입니다. 앞으로 10년이 남았습니다.
한국 배터리 3개사는 공격적인 리듐이온 배터리 생산설비 투자와 함께 차세대 배터리로 평가받는 전고체 배터리 R&D에도 작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을 비롯 해외 언론은 배터리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눈 앞에 다가왔다는 소식을 정기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양산시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정말 빠르게 충전할 수 있고 주행 거리가 크게 증가한 안전한 고효율 배터리를 이제 곧 만나볼 수 있을까요? 이른바 2차 전지 관련주에 투자한 다수의 개미 투자자는 차세대 배터리 관련 소식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전기차 혁명을 뒷받침하는 배터리 기술혁명의 현 주소와 앞으로 양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분석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와 스타트업이 주도하는 차세대 배터리: 양산은 늦어

결론부터 말하면 차세대 배터리 관련 소식은 대부분 연구소나 배터리 스타트업의 R&D 성공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고효율 차세대 배터리가 실제 양산되기 까지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사이 전통 리튬 이온 배터리의 성능은 매년 평균 7-8% 향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5년 또는 10년 뒤 양산을 시작한 차세대 배터리의 성능과 조금식 개선되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성능은 그 때쯤 비슷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전통 배터리 생산 기업뿐 아니라 벤처캐피털의 배터리 스타트업 투자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1년 1월부터 9월까지 전기차, 배터리, 리튬 광산에 투자된 벤처캐피털 투자금은 18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출처: PitchBook

이렇게 큰 투자금이 특정 기술 분야에 쏠리다 보면 과장과 사람의 눈길을 끌려는 행위는 피할 수 없습니다. 자율주행기술에 대한 빈번한 과대 보도처럼 새로운 배터리 기술에 대한 과시형 보도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는 차세대 2차전지로 전기비행기의 상용화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Battery breakthrough could finally give us electric planes
Battery breakthrough achieves energy density necessary for electric planes

하버드 대학교 연구자 신 리(Xin Li)와 루한 예(Luhan Ye)가 2021년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전고체 배터리 기술의 현황을 분석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배터리 기술 관련 지나치게 많은 '비약적 발전'이 주장되고 있습니다. 이 중 많은 경우는 양산될 수 없습니다(There are too many battery ‘breakthroughs’ in the past 5 years, and not many can be implemented in a commercial product.)"
A dynamic stability design strategy for lithium metal solid state batteries - Nature
A multi-layered electrolyte, in which a less stable electrolyte is sandwiched between two electrolyte layers that are more stable, can inhibit the growth of lithium dendrites in highly pressurized solid-state lithium metal batteries.

소니가 1991년 처음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상용화한지 30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의 비약적 발전(breakthroughs) 소식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의 혁신은 그렇게 자주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배터리 성능 매년 7-8%씩 개선

테슬라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마크 타페닝(Marc Tarpenning)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배터리 성능은 매년 7%에서 8%씩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2003년 테슬라를 창업한 이후) 19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배터리 성능에서 큰 개선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매년 7%에서 8%씩 좋아지고 있습니다(It’s been 19 years, and we still haven’t had a step change in battery capacity—it just ticks along at 7% to 8% per year.)"
A Tesla with 2,000 Miles of Range: Pure Hyperbole As Battery Advancements Remain Linear… Right?
What’s holding battery technology back from achieving the significant advancements that are often advertised by third parties but not…

이렇게 배터리 성능이 혁명적 향상보다 조금씩 진화하는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성능 배터리가 가지고 있는 매우 높은 수준의 복잡성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입니다.

  1. 리튬 이온 배터리의 경우 연쇄적으로 반응하는 화학적 작용 및 반작용이 분자 단위(molecular level)에서 일어나고 있고 이를 조정하는 것은 그 만큼 난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연구소에서 진행된 연구 성과를 대량 생산으로 연결하는 일입니다.
  2. 또 하나는 연구소에서 구현한 배터리 성능 향상 또는 이론으로 입증한 성능 개선을 배터리가 수 만회 또는 수 십만회 충전하는 과정에서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3. 특히 전기자동차(EV)에 사용되는 배터리는 스마트폰 배터리 대비 복잡성이 더 높고 안정성 요구 사항이 큽니다. 전기자동차에 이용되는 배터리는 셀(cell) → 모듈(module) → 팩(pack)으로 묶음 단위가 변화합니다. 테슬라 모델 3 한 대에 들어간 가장 작은 팩에는 아이폰 1,666대에 사용되는 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약하면 모듈과 팩 단위에서 고성능 배터리가 그 성능을 유지하는 일은 간단치 않습니다. 연구소와 스타트업이 발표하는 배터리 성능 개선은 전기자동차에 사용되는 팩을 기준으로 한 성능 향상 수치가 아닙니다. 실험실에서 입증된 배터리 성능은 눈 길에서 그리고 뜨거운 여름에도 불규칙 가속과 제동을 하는 전기자동차에서 구현되어야 합니다.
  4. 마지막으로는 배터리 가격입니다. 배터리는 전기자동차의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전기자동차 대중화 또는 전기자동차사이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배터리 가격을 낮추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차세대 배터리 또한 대량생산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반드시 구현해야 합니다.

이러한 복잡성과 난이도 때문에 배터리 성능 향상에는 막대한 규모의 R&D 및 설비투자가 필요합니다. 전통 배터리 기업이 이러한 투자를 견뎌낼 수 있습니다. 배터리 스타트업의 경우 벤처캐피털 투자금만으로 배터리 연구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결국 전통 배터리 기업의 투자 또는 인수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빈번하게 '비약적 발전(breakthroughs)'라는 자기 PR이 필요합니다. 배터리의 비약적 혁신을 다루는 보도는 오해의 소지가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자기 PR은 투자자가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유도할 소음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차 전지의 혁신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차세대 배터리가 시장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전통 리튬이온 배터리는 매년 7-8%의 성능 향상을 이뤄낼 것입니다. 5년 이후 또는 10년 이후 양산을 시작하는 차세대 배터리의 경우 어쩌면 매년 개선되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비슷한 성능을 보일 수 있습니다.